퇴사를 약 3주 정도 앞두고, 호주 멜버른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15년지기 친구가 멜버른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고맙게도 나를 초대해주었다. 숙소 비용을 들이지 않고 호주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격이다. 사실 처음에 제안을 해주었을 때는 고맙기는 했지만 진짜로 가게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퇴사가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회사 일뿐만 아니라 다른 준비 중인 일들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퇴사 날짜는 2월 28일 수요일. 토요일까지는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아 3월 4일 정도에 떠나 일주일 정도 지내다 오는 비행기편을 찾아보았다. 멜버른 직행 비행기는 이전에는 아예 없었다가 올해 처음 아시아나에서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가격이 비쌌다. 보통 한국에서 멜버른으로 오는 비행기는 시드니 혹은 중국/홍콩을 경유해서 오게 된다. 경유와 저가 항공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 별로 없어서, 스카이스캐너에서 최저가로 검색을 해서 중국동방항공의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중국 항공사 중에는 그나마 중국동방항공이 낫다는 후기를 들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날짜는 3월 4일 월요일 - 3월 12일 화요일(서울 도착, 3월 11일 월요일 멜번 출발), 가격은 58만원!
그러나...
비행기표가 취소됐다는 메일이 왔다. 20만원 정도를 더 주고 다시 비행기표를 구입했는데, 이것마저도 취소되었다...ㅜㅜ
위의 두 주문 건에 대해서는 환불을 요청했고, 또 다시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홍콩을 경유하는 케세이퍼시픽 비행기 티켓으로 가격은 91만5천원.
시간은 흘러 3월 3일 일요일. 오후 3시 비행기라 오전에 열심히 짐을 챙기고 점심 쯔음 공항으로 출발했다.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였고, 비행시간은 각각 4시간 10분, 9시간 10분이었다. 각각 기내식 1번, 2번이 나왔고 기내식에 나온 빵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매번 열심히 먹었다.
멜버른 국제 공항에 도착했는데, 여자 혼자라서 그런지 뭔지 모르겠지만 입국카드를 보더니 나를 그냥 내보내주지 않고 추가 짐 검사를 진행하게 했다. 왜 오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지낼건지 물어보면서 짐 가방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수색했다. 오랜만에 영어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짐 검사를 당하는게 긴장이 되어 말을 막 더듬었는데 더 수상해보였을 것 같다ㅋㅋ 이 와중에 핸드폰을 짐 찾는 곳 옆 화장실에 두고 온 게 생각났다. 다행히 누가 인포메이션에 맡겨서 되찾을 수 있었다..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 사건과 및 이후의 경험들로 멜버른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짐 검사를 당하고, 잃어버린 핸드폰을 되찾고, 공항에서 35AUD짜리 USIM을 구입했다. 이 때도 정신 없이 기존 핸드폰 유심 공항에 두고 올 뻔했다;; 다행히 우버를 타기 전에 생각이 나서 유심을 교체했던 자리로 돌아가 유심을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행 시작 전부터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행기표 두 번 취소 당하고, 공항에서 추가 짐 검사 당하고, 핸드폰 분실에 유심 분실할 뻔... 그래도 다행히 재앙 수준까지 가지는 않아서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멜버른에서의 첫 날을 시작했던 것 같다.
2024년 3월 4일 아침, 본격적인 멜번 여행의 시작. 긴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는데 날이 너무 좋아서 갑자기 에너지가 솟아났다. 친구 집에 도착해서 짐을 두고, 커피 마실겸 시티 한 바퀴 산책을 할 겸 밖으로 나왔다.
산책 도중 들러 본 로얄 아케이드와 블록 아케이드에는 예쁜 상점들이 많았다. 비행기에서 최근 개봉한 티모시 샬라메 주연 영화 웡카를 보았는데, 영화 속 세상에 존재할 법한 마녀 상점과 초콜릿 가게가 이곳에 실제로 존재했다...! 멜버른에는 19세기 중후반의 빅토리아 양식(빅토리아 여왕의 집권 시기라서 이름이 붙음)을 가진 건축물들이 많다. 아치 형태가 많이 보이고 장식이 화려한 유럽스러운 건물들이 이것들이다. 멜버른에 이런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1850년대에 금이 발견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이 시기에 풍부해진 자본이 건물들에도 반영이 된 까닭이다.
로얄 아케이드와 블록 아케이드는 빅토리아 양식 건축물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케이드는 아치형태의 지붕을 가진, 양 옆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는 구조를 가진 장소를 일컬으며, 로얄 아케이드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라고 한다. 블록 아케이드의 이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보자면, 19세기 중반에 블록 아케이드가 위치한 Collins Street에서는, 좀 산다는 멜버른 사람들이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산책을 하거나 쇼핑을 하는 "doing the block" 이라는 행위가 유행을 했다고 한다. 뽐내기도 하고 서로의 차림새를 구경하기도 했다는데, 역시나 문화예술의 도시 멜버른답게 그 옛날부터 이런 풍습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치장할 만한 돈과 시간과 여유가 있었던 그 시절에 나도 멜버른에서 살아봤으면 참 재밌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https://maps.app.goo.gl/1LZ8HKKPjzm59ax27
로열 아케이드 · 335 Bourke St, Melbourne VIC 3000 오스트레일리아
★★★★☆ ·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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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 아케이드 · 282 Collins St, Melbourne VIC 3000 오스트레일리아
★★★★★ ·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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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아케이드 내 상점 중 하나인 SpellBox 에 들러 보았다. 마녀와 마법사들을 위한 상점 컨셉인데, 마법이 깃든 gemstone, 주술을 외울 때 사용할 것만 같은 candlesticks 등등을 판매하고 있다. 해리포터 속 세상에 들어온 것 마냥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회전판을 돌리고 그에 맞는 운세 종이(?)를 뽑을 수도 있다. 덕분에 여행 시작을 설렘 가득으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돈 드는 게 아니라서 여행 마지막 날 가서 또 뽑았다.)
https://maps.app.goo.gl/unM9sh4TAKJryE7v8
SpellBox · Royal Arcade, 17/331/339 Bourke St, Melbourne VIC 3000 오스트레일리아
★★★★★ · 마술용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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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마카롱 가게에서 마카롱을 샀는데, 하나에 3.5 호주달러 정도였다. 처음보는 코코넛 패션후르츠 맛이 있길래 골라보았다. 친구는 얼그레이 맛을 골랐다. 둘 다 정말 맛있었고, 다른 맛들도 궁금해서 마지막 날에 또 사먹으러 갔다.
https://maps.app.goo.gl/2hKaP4HAEVTSC9iF8
The Little Royal Macaron Specialist · Royal Arcade, 335 Bourke St, Melbourne VIC 3000 오스트레일리아
★★★★☆ · 디저트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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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유명한 멜버른에서 마신 첫 커피는 Brother Baba Budan의 피콜로였다. 메뉴판에 없지만, 현지인의 추천으로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조금 넣어서 작은 컵에 주는데, Block Arcade에서 산 마카롱과 같이 먹기에 양이 딱 적당했다. 커피 맛 잘 모르지만 참 맛있었다. 이른 점심 쯤 시간에 갔는데, 주문을 하고 가게 앞에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관광객은 아닌 것 같아보였고,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직장인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엄청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고, 메뉴 나오기까지 한 1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https://maps.app.goo.gl/LT9PArAz5gCWB38p7
브라더 바바 부단 · 359 Little Bourke St, Melbourne VIC 3000 오스트레일리아
★★★★★ · 커피숍/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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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창문에, 그리고 컵에 그려진 손 로고가 인상적이라 사진을 한 방 찍고, 햇볓이 살짝 들어오고 있는 바로 옆 골목이 예뻐서 한 장 더 찍어보았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으니 참 맛있었는데 마카롱..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다.